작성일 : 06-02-0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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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부지부
 조회 :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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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로 가지 않으면 망한다”
인터뷰 - 박유기 신임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고동우 기자 intereds@hanafos.com
▲ 사진 박진희 기자 pak7130@hanmail.net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대표명사로 추앙받던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진보진영 전체의 자랑이자 희망이기도 했다. 현대차노조가 최선두에 서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저지든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이든 또 진보정당이든 안 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젠 누가 봐도 ‘이 나라에서 가장 많이 욕을 얻어먹는 집단’ 중 하나다. 좌우를 가리질 않는다. 지난 12월 14일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는 “다수 보통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권리신장을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에 전혀 기여를 하고 있지 못하다”며 ‘재벌 대기업노조’를 ‘한국 사회 위기 주범 톱 10’으로까지 꼽았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그런 현대차노조가 얼마 전 4만 조합원과 함께 향후 2년을 책임질 새로운 ‘수장’을 뽑는 선거를 치렀다. 이 선거에서 ‘바꿔야 산다! 대안과 실천으로 책임지는 노동조합’이란 깃발을 내건 박유기 후보(41)는 이른바 ‘온건·실리주의’ 노선으로 분류되는 이경훈 후보(45)를 3차 투표까지 가는 격전 끝에 물리치고 새 위원장에 등극했다.
박유기 신임 노조위원장은 현대차 내 현장운동 조직인 ‘민주노동자회’ 소속으로 민주노조운동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인물이며, 그간 노조 홍보부장·기획실장·사무국장 등을 지낸 바 있다. 또한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한 박 위원장은 이념적·정치적 노선상으로는 ‘범좌파진영’ 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984년 울산공고를 졸업하고 1988년 현대차에 입사한 그는 이선희씨(41·울산 북구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의 남편이자 초등학교에 다니는 대희(12)·민희(11)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말』은 선거 종료 다음 날인 지난 12월 15일 1시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선거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박유기 위원장을 만나 2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
위원장님은 품질관리쪽 일을 해온 걸로 압니다. 그럼 사무직 노동자인 거죠.
“예. 그렇죠. 품질관리4부 5급 말단 직원입니다.”
입사한 지 18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말단 직원이네요.
“한번도 승진을 못했죠(웃음). 인사고과가 80점을 차지하는데 현장활동, 노조활동을 하면서 높은 점수 받을 수 있겠어요.”
사무직에선 처음 위원장이 나온 거죠.
“처음입니다. 사무직 출신이라고 사무직들도 의외로 많은 지지를 보낸 것 같아요. 저를 사무직이라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생산직과 사무직 사이에도 어떤 갭이 있나 봐요.
“몇 년 전만 해도 위원장 선거 때 ‘컨베이어 라인도 모르고 주야간 맞교대도 안 해본 놈이 어떻게 컨베이어 노동자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냐’는 선동이 있었죠. 하지만 이번엔 전혀 없었습니다.”
노동운동은 왜 시작하게 됐나요. 당시엔 보통 지하 서클 같은 데서 학습받고 현장에 들어오지 않았나요.
“전혀 아닙니다. 아주 간단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 교지 편집실에서 일했거든요. 근데 어느 날 현대자동차 총무실 홍보과에서 일하는 학교 선배가 사보 기자로 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근데 또 비슷한 시기 공교롭게도 노조 편집실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도 선전 일 안 해보겠냐고 제안을 해온 거예요. 그래서 좀 고민하다 노조로 간 것이고, 그때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때 만일 회사 홍보과로 갔다면…. 노조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홍보과로 갔으면 여기 없었겠죠. 지금 아마 과장쯤 돼서 잘 살고 있겠죠. 1984년 학교를 졸업하고 좀 있다 방위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좀 막가는 인생을 살긴 했지만 사회비판적 시각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터졌는데 현대중공업쪽에 노동운동 하는 친구가 있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요. 그래서 아마 회사쪽 가서 누가 시키는 대로 일하고 그러는 거는 별 정이 안 갔던 것 같아요.”
위원장님은 그간 노조 기획실장, 사무국장 등을 지내서 ‘실무자형’이란 인상이 강한데, 그게 이번 선거 승리에 도움이 됐을까요.
“제가 실무자로 많이 인식되어 있죠. 개인적으로도 거의 버릇처럼 그렇게 일을 해요. 시켜서 일이 잘 안 되면 그냥 제가 다 해버리고 말죠. 조합원들이 새로운 지도력을 원했던 것 같아요. 과거완 상황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회사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끌려가면서, 무조건 안 된다며 저항하는 싸움 방식 갖고는 더이상 노조운동 전망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많습니다.
자본의 작동구조, 지배구조 등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전반을 뭔가 좀 꿰뚫어 보는 능력, 그리고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생산해 내는 능력을 요구받고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박유기가 정책적·실무적 역량, 전문성 등을 갖추고 있는 것 아니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게 승리의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출마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올해 비정규직 투쟁이나 임단협이 정리되는 과정 등에서 현대차 노조운동이 자꾸 기업별 노조만의, 정규직 노조만의 문제로 쪼그라드는 것을 보면서 뭔가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또 지역사회에서 고립되는 문제, 상급단체와의 관계 등 여러 가지가 심각했습니다.
그리고 안 그래도 지난 5월 터진 입사비리 사건 등 운동가들의 도덕성 문제, 노조 간부들의 특권 문제까지 불거져 있는 상황인데,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로 가면 우리한테 더욱더 희망은 없다고 본 겁니다.”
혹시 부인께서는 별 소리 없었나요.
“왜 없었겠어요. 후보 나오면 이혼한다고 했죠. 이혼 도장 찍고 나가라고 했죠.”(웃음)
왜 그러신 거죠?
“아내도 그간 노조위원장을 지낸 분들이 온갖 구설수에 시달리다 결국은 사람이 피폐해지는 꼴을 지켜봐 왔으니까요. 자기 남편 그런 대상 되는 건 싫다는 거였죠. 괜히 구설수 오르지 말고 지금처럼 그냥 현장에서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설득했나요.
“설득이 아니라, 이상한 일이 터져버려서 말릴 명분이 사라졌죠. 선거 직전 제가 입사비리에 연루된 것처럼 ‘포장’된 유인물이 현장에 뿌려졌습니다. 한 현장조직이 검찰 자료를 입수해서, 돈을 받은 입사비리 연루자를 포함해 ‘입사추천’을 한 전·현직 간부 수십 명의 이름을 공개한 거예요.
우리 선본 내부에서도 박유기가 나가야 하냐, 말아야 하냐 엄청 논란이 많았죠. 근데 아내도 운동(현총련 출신)을 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같이 살아온 세월이 있고 저를 믿어주니까.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함께 싸워 온 동지를 매장하려는 운동 풍토를 도저히 용납 못하겠다고 했어요. 만일 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를 인정하고 완전히 나쁜놈, 부패 인사로 매장될 판이었던 거죠. 그 문제가 없었으면 아마 끝까지 말렸을 거예요.”
‘입사비리’ 연루설의 진실
저도 그 유인물을 봤습니다만, 대체 진상이 뭔가요.
“저는 노조 사무국장 등으로 일할 때 단 한 번도 입사추천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물론 많은 ‘유혹’이 있었죠. 하지만 전부 다 거부했습니다. 심지어 우리 어머니가 전화했을 때도 ‘노’라고 했어요. 이번에 논란이 된 건, 지난 2004년 사무국장 임기 끝나고 휴직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친구가 전화를 해와서 자기 조카 입사서류 넣는데 ‘당사 지인란’에 이름 좀 넣자고 해서 그러라고 한 게 전부입니다. 오히려 전 그 친구한테 나하고 회사 관계가 안 좋은데 뭔 도움이 되겠냐고 했어요.”
그럼 잘못은 없었다고 보는 건가요.
“제가 만일 회사 인사담당자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넣었다거나, 아니면 노조 직책이 있어서 ‘알아서 해라’ 이런 식으로 넌지시 압력을 넣었다면 모르지만 일절 그런 일이 없습니다. 추천을 부탁한 사람한테 밥 한 끼 얻어먹은 적도 없어요.
사실 입사추천은 일반 조합원이든 반장이든 누구나 다 하고 있는 것이거든요. 물론 회사쪽에서 전직 노조 간부와 일반 조합원의 추천을 좀 달리 봤지 않겠냐는 혐의를 둘 순 있겠죠. 공교롭게도 취업도 돼버렸고. 그래서 선거 때 조합원들에게 사실관계를 명확히 설명하면서, 조금이라도 활동에 문제되는 지점이 있으면 사과드리고 앞으로 ‘티끌’까지 없도록 노력하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입사비리나 특권 문제가 나와서 말인데 단지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 노동자들하고만 괴리가 심각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심지어 노조 간부와 일반 정규직 조합원 간에도 어떤 ‘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심각하죠. 그러니까 위기라고 하는 거죠. 하지만 이번 입사비리 사건을 거치면서 내부 문제에 대해 좀 환기가 됐을 것이라고 봐요. 간부들과 운동가들에게 기본적 소양과 활동의 기준, 사회변혁의 전망 등을 끊임없이 교육해 나가야 합니다.”
자기 권력 이용해서 잠깐 얼굴 내비치고 잔업수당, 특근수당 받아먹는 사람도 있다고….
“극소수 그런 인간들이 있죠. 그래서 자꾸 노조 간부들의 도덕성 문제가 나오는 건데, 뭔가 강제할 규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간부활동 기본수칙을 만들어서 대의원대회에 상정할 생각입니다. 고발센터도 만들어서 만일 어기면 조사도 펼치고, 징계도 가능하도록 해야죠.”
산별노조 전환,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위원장님은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이란 자리를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나요.
“생활상에서는 편하게 하려고 합니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회사 근처에서, 집 근처에서 조합원들과 편하게 막걸리 한잔씩 먹으며 이야기 나누고 그럴 거예요. 그리고 노조라는 조직의 속성은 기본적으로 자기 조합원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와 현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여기에만 국한되다 보니, 우리 구성원만 대상으로 하는 집행이 계속 돼오다 보니 같은 노동계급 내에서조차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는 거죠. 이래서는 자본과의 싸움도 더이상 안 됩니다. 고립된 상황을 깨고 우리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어야죠.
비정규직 등 같은 노동자들과, 또 많은 민중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조를 이끌어나가는 게 현대차 노조위원장 자리고, 역할이라고 계속 생각을 가다듬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혹’이 있을 텐데요.
“주위에서 자꾸 부추기죠. 오늘도 뭐 상공회의소장이 화환을 보낸다고 그러고…. 좀 지나면 또 어떤 사업 하는 게 우리 정규직 조합원 표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 정서에 도움이 되냐 안 되냐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나를 괴롭힐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대로 그냥 가면 우리 노조 별 전망이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있습니다. 소신껏 원칙대로 해나가려고 합니다.”
얼마 전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는 사회적 책임을 못하고 있는 점, 부정부패, 정파갈등 등을 거론하며 ‘한국사회 위기주범 톱 10’ 중 하나로 재벌 대기업 노조를 꼽았더군요. 현대자동차노조가 주타깃이 아닐까 싶은데요.
“조합원들의 의식을 끌어올리는 사업이 잘 안 되고 있는 거고, 노조는 항상 그 ‘조합원 의식’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노조 간부나 운동가들은 노동해방, 진보정치, 계급 이야기하지만 조합원들은 ‘저게 뭔 이야기냐’ 하는 수준이니까. 기업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조, 다 같이 먹고 살아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도 전혀 가능성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경험도 없고. 하지만 우린 계속 시도할 것입니다. 조합원들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기업별 노조하에서 선거는 이번이 끝이라고, 더이상은 없다고. 2006년 내에 반드시 산별노조 전환을 완료해서 기업별 노조운동의 관성을 깨는 데 한 발짝이라도 전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위원장님이 노조 사무국장 재직 중이던 지난 2003년 산별 전환 결의투표를 했지만 부결된 걸로 아는데, 과연 이번엔 가능할까요.
“2% 차이로 아깝게 부결됐죠.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라고 봅니다. 만능은 아니지만, 현재 재벌 대기업 노조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적인 대안이니까요. 이번 선거 때도 모든 후보, 전 조직이 다 산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정파를 뛰어넘어 모든 조직이 참여하는 산별 전환 추진기구를 구성할 예정입니다.”
만일 산별 전환이 또 실패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 같습니까.
“그렇게 되면 정말 비장한 각오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7년이면 복수노조도 허용되지 않습니까. 산별노조가 돼도 기업 내 또다른 노조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건데, 우리가 지금 있는 조직 쪼개서 무슨 득이 되겠어요. 하나로 뭉쳐야죠.
만일 안 되면 어쩔거냐 생각은 안 해봤지만 여러 가지 판단을 해봐야 할 겁니다. 계속 노동운동 한다고 그냥 개폼 잡고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적당히 살 건지 말 건지…. 조합원들한테도 그랬습니다. 이대로 가면 노동조합 망한다구요.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고요.
만일 현 시점에서 회사가 정리해고를 밀어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우리가 파업을 한다, 그럼 일반 국민들이나 비정규직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그래, 몇 년 동안 배불리 잘 먹더니만 잘됐다’ 그러지 않겠어요? 그렇게 등돌리고 있으면 우리가 대체 누구랑 싸울 수 있겠습니까.”
‘돈버는 기계’가 ‘귀족’이 될 수 있나
산별 전환없이 복수노조 오면 다 죽는다는 말씀 같은데, 그럼 반대를 하는 건가요. 하지만 정규직노조와 겹쳐 노조 결성을 못하는 비정규직들이나, 삼성 등 노조 설립에 방해를 받고 있는 곳은 또 사정이 다를 텐데요.
“이전 전노협 시절부터 노동계는 복수노조 허용을 계속 요구해 왔죠. 노조 결성의 자유를 죄악시해야 한다고 보진 않아요. 다만 기업별 노조체계가 굳어진 상태에서는…. 어차피 복수노조 돼도 사용자는 같단 말이죠. 교섭대상이 같은데 노조가 두 개, 세 개로 갈라지면 그만큼 힘이 약화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기업별 노조체계에선 도움이 안 된다고 보는 거죠. 산별 전환이 빨리 돼야 합니다.”
‘귀족노조’ ‘배부른 노조’라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만일 여론조사를 해본다면 국민들 상당수가 동의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것보다 ‘임금이 높아서 귀족노조다’ 이렇게 몰아가는 건 우리 조합원들이 들으면 참 억울한 측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노동시간이나 임금구조, 근속년수 등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봐요.
연 2600시간에 달하는 노동시간, 주야간 맞교대, 임금에서 기본급(평균 128만7000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대밖에 안 되는 구조, 평균 근속년수가 14년이나 되는 현실 등을 종합해 보면 임금이 엄청나게 높다고 볼 순 없어요.
또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라는 기업의 매출액과 매출원가에서 노무비 비중, 노동소득 분배율 등을 살펴보면 기업경영에 부담줄 정도도 전혀 아닙니다.”
위원장님 연봉은 얼마나 되나요.
“한 4000만 원 되죠.”
연장근무 수당, 특근 수당 다 포함된 건가요.
“전 사무직이라 잔업·특근이 없어요. 월급쟁이죠. 그러니까 이게, 만일 우리 4공장쪽 가서 ‘귀족 노동자’ 그러면 아마 맞아 죽을 거예요. 거긴 물량이 없어서 3년째 잔업·특근을 거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연봉이 3000만 원대 정도예요. 하지만 공급이 딸리는 쪽은 잔업·특근이 많을 수밖에 없죠. 그쪽은 연봉 6000~7000만 원대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요.”
기본급 비중이 낮으니까, 잔업·특근을 무리하게 할 수밖에 없는 거군요.
“그렇죠. 한편으로 보면 참 불쌍하죠. 토요일도 없고, 일요일도 없고 그냥 그렇게 사는 거죠. ‘돈버는 기계’가 따로 없습니다. 또 문제가 뭐냐면, 그렇게 벌면 소비 수준도 그렇게 맞춰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임금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죽는 줄 알아요.”
위원장님은 부인과 아이 둘 해서 가족이 넷인데, 연봉 4000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요.
“그냥 사는 거죠, 뭐. 전 부족한 건지, 많은 건지 모르겠어요. 양주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차도 없고 담배도 안 피우고 전 별로 낭비 같은 게 없어요. 활동비나 회비 빼면 다 술값이고 그렇죠. 저는 지난 1998년 정리해고 반대 싸움 끝나고 구속됐다 나와서 1년 6개월 동안 무급휴직을 받았는데 돈 없어서 괴롭다는 생각 별로 안 했거든요.”
▲ 사진 박진희 기자 pak7130@hanmail.net
‘귀족노조’라는 비판이 단지 임금 문제 때문에 제기되는 건 아닐 텐데요.
“2003년 제가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귀족노조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그때는 정면돌파하려 했습니다. 사실관계는 사실관계대로 명확히 설명하고, 주5일근무와 비정규직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뒤에 배치하는 교섭전략으로 대응한 거죠.
현대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문제로 하는 파업을 뛰어넘어, 이를테면 자동차산업 문제라든가 비정규법안 같은 정부 정책, 법제도 개악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싸움이 필요해요. 좀더 사회적 의제, 계급적 의제에 결합해서 조합원들의 연대와 단결의식을 높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귀족노조라는 비판이 좀 상쇄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만한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보면 민주노총이 할 수 있는 전술은 파업 말곤 다른 게 없어요. 주체 동력도 안 되는데. 그래서 파업 선언 안 하면 안 한다고 문제삼고, 또 선언해 놓으면 안 돼서 문제가 되고…. 귀족노조 문제는 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이냐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지난 1996~19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총파업 때처럼 뭔가 좀 준비되고 모아지는 파업이 필요해요.”
현대자동차노조가 비정규법안 등 사회적 의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건, 따져보면 민주노총 전체 차원의 문제인데 좀 억울하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억울하다는 것보다는 문제는 그런 거죠. ‘민주노총 파업지침에 따라 제대로 한 데가 어딨냐’ ‘하고 보니 우리뿐이더라’라는 게 조합원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맨날 파업하자 하고, 엉뚱한 놈이 소리 높여 외치고, 또 얼마 지나면 파업하자 하고 이런 반복되는 사업이 조합원들에게 피해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거예요.
이번 선거 때도 한 후보가 ‘조합원들에게 실리 없고 명분 없는 파업은 단호히 거부하겠다’ 해서 박수받고 그랬는데 그 정도로 지금 어려운 상황에 몰려 있는 거죠. 비정규법안 등에 대해 아무리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해도, 조합원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그거예요. ‘우리만 나서서 싸움이 제대로 되겠냐’고.”
그렇게 조합원들이 과거와 다르게 이기적으로 변했다, 자기 실리만 추구한다는 비판이 많은데도 소위 ‘실리주의’ 노선의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용문제 때문이죠. 2007년이 되면 해외공장이 200만 대 생산 규모로 정상가동 될 겁니다. 그럼 국내 공장 축소는 불가피한 문제가 될 거예요. 당연히 1998년 때처럼 우리를 자르려고 하겠죠. 그럼 어떻게 대응해야 되느냐. 조합원들은 노사 간 협조적 관계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한판 싸움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실리’보단 ‘고용안정’이 우선이라는 관점은 있는 거예요.”
1998년 정리해고 경험이 “잘 돌아갈 때 무조건 벌자”는, 노조 입장에서 부정적인 측면의 인식을 낳긴 했지만 또다른 측면에서 각인시킨 게 있는 거군요.
“그렇죠. 1998년 투쟁이 끝나고 설문조사를 했는데 ‘제2의 구조조정 닥치면 어쩔 거냐’ 했을 때 거의 상당수가 1998년을 뛰어넘는 더 강력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회사는 노동자들을 근본적으로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일자리 보장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거예요.
물론 당시 제가 노조 정책실장이었으니까 선거 때 그런 공격도 있었죠. 막판에 정리해고를 수용한 놈이라고, 그런 놈이 어떻게 고용문제를 책임지냐고. 전 그렇게 받았습니다. ‘그래, 36일 동안 파업투쟁 끌고가서 결국 구속되고 1년 6개월 무급휴직 받았다, 그럼 당신들은 그때 뭐했냐?’ 할 말이 있을 수가 없죠.”
비정규직 문제, 노조 핵심 과제로
해외공장 생산이 본격화되면, 그래서 고용문제가 또 닥치면 1998년 때처럼 현재 1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고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는데요.
“아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죠. 정규직-비정규직 고용안정을 동일하게 지켜내야 한다는 대전제는 변함이 없습니다. 현실화하기 위해선 회사측 기업경영 전략에 대한 노조의 참여와 개입 수준을 상당히 높여야 해요. 현재 회사는 철저히 노조를 배제하고 가고 있죠. 그리고 고용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참 갑갑해지는 게 있습니다.
물량 변동이 심하니까, 또 산재 환자·휴직자 등 생산라인 공백이 크니까 회사가 직접 고용하는 단기계약직은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고요. 지금처럼 파견, 도급 형태가 아니라 현대차 내에 인력은행 같은 걸 둬서 운영할 필요도 있어요. 소위 말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 비정규직을 사용하되, 차별을 철폐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가자는 거죠.”
지난 9월 사내하청 노동자 고 류기혁씨가 자살했을 때, 전 노조 집행부의 대응을 놓고 말이 많았는데요. ‘열사’ 호칭 부여와 대책위 참여 여부 문제였죠?
“열사가 맞다 아니다 이런 논란을 벌일 일이 아니었죠. 그 사건이 전 집행부 임단협 말미에 터졌는데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혼선을 준다는 판단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볼 때 상당한 문제가 있었어요. 계급적 노동운동이라는 자신들의 이상, 그리고 비정규직 사업을 열심히 해왔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것이었죠.
비정규직 사업에 대한 진정성이 과연 있었느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은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 특별교섭을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내고 임단협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당연히 힘이 실릴 수가 없죠. 고 류기혁 열사 문제나 비정규직 탄압 등을 뒤로 미룬 채 정리했으니, 현장에선 특별교섭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이야기하긴 하지만 현대차 내에서 임금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정규직의 50% 수준도 안 되는 걸로 아는데요. 혹시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비정규직 임금을 더 높이겠다는 의지는 없는지요.
“그건 대단히 왜곡된 논리라고 생각해요.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둬들이는 자본이 노동자들한테 파이를 조금 던져주고 ‘니들끼리 나눠 먹어라’하는 거랑 똑같다고 봐요.
비정규직들의 수당, 성과급 등을 정규직 수준으로 맞추도록 노력하면서 격차를 완화시키는 방법이 맞는 거지,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자본이 던져준 파이 따먹기밖에 안 됩니다. 이게 지금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들 임단협까지 대리교섭하는 식으로 가고 있으니까 계속 문제가 되는 건데,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독자적인 조직으로 협상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울산뿐 아니라 아산·전주본부 등에도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조가 있긴 한데요.
“있긴 하지만 다 상황이 어렵습니다. 물론 원하청연대회의가 가동되고 있고, 우리는 불법파견 철폐·차별 철폐·노조활동 보장·정규직화 등 그 안에서 잡아놓은 원칙을 계속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우리 노조의 핵심과제라는 점에는 이론이 없어요.
하지만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도 노력을 해줘야 합니다. 특정기업 노조에만 떠맡기는 게 아니라 금속노조 차원에서 크게 비정규직 사업을 벌여내야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로 막힘이 없었다. 박유기 위원장은 인터뷰 취지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찾아온 기자의 질문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술술술 받아나갔다. ‘위원장’ 그러면 으레 ‘정치인다운’ 면모가 있게 마련인데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모든 질문을 솔직하게 대했으며, 정책전문가라는 평가답게 따로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문제의식을 논리적으로 쉼없이 이어나갔다.
박 위원장은 진보진영 내에서 현대차노조에 제기하는 문제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비정규직 문제 등 여러 비판에 대부분 공감을 표했으며, 그 심각성 또한 절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앞에 놓인 산은 한두 개가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물론이고, 산별노조 전환·운동가들의 도덕성 회복·정파갈등 극복 등을 통해 현대차노조에 드리워진 치욕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 해외공장 생산 확대 등이 몰고 올 고용불안 문제 역시, 여론의 십자포화 속에서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박유기 신임 위원장은 온갖 난관을 이겨내고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바꾸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박 위원장의 경고는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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