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7-03-28 16:52
|
일자리 증가 터무니없고, 되레 '구조조정' 우려
|
|
|
글쓴이 :
서부지부
 조회 : 1,392
|
한미FTA는 노동자에게 무엇인가
정부는 전망했다. 한미FTA를 체결하면 국내 일자리는 단기적으로 약 8만5천명이 줄어들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약 10만4천명이 늘어난다고. 이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연구결과를 근거로 하고 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미국계 투기 자본의 대규모 진출과 사실상 경제통합으로 인해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 고용불안이 야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IMF 이후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고용 없는 성장’ 추세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교역이 늘어나더라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한미FTA가 체결되면 실제 일자리는 어떻게 변화할까. 만약 늘어난다면 그 자리는 어디에서 얼마나 늘어날까. 줄어든다면 어디에서 얼마나 줄어들까. 늘어나는 일자리의 질은 과연 어떠할까.
미국이 정한 협상시한을 눈앞에 두고 있는 현재까지 한미FTA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편이다. 정부도 한미FTA가 다소 모호한 개념인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하지만, 정작 경제활동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노동자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하지 않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반대 투쟁도 쇠고기 개방문제나 스크린쿼터 등에 맞춰지면서 노동자들은 한미FTA는 자신들의 문제와 크게 상관없는 의제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다보니 여론 일각에서는 한미FTA를 농산물이나 공산품의 무역협상 정도로 여기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러나 한미FTA는 단순한 무역협상이 아니다. 협정이 체결되고 효력이 발생하는 순간부터 교역 뿐 아니라 국내 법·제도를 포함해 산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결국 산업의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이는 경쟁력이 약한 산업의 퇴출을 시작으로 대부분 산업이 공공성보다는 ‘주주의 이익’을 중심으로 재편이 불가피해진다. 결국 ‘최소투자 최대수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노동자의 대량 실직과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고용의 확대 등의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FTA가 노동자의 삶을 송두리 째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자리 10만개 증가?
KIEP는 한미FTA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통해 단기(정태)적으로는 농업에서 30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대신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는 각각 4만명과 17만2천명이 늘어나 총 8만5천명이 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중장기(동태)적으로는 농업에서 38만명이 감소하는 대신 제조업에서 20만명, 서비스업에서 28만8천명 등 모두 10만4천명이 늘어날 것이라고 추정했다.
KIEP는 일반균형연산(CGE)모델을 이용해 이 같은 결과를 추론했다. CGE모델은 완전경쟁시장, 시장의 안정상태, 거시균형조건, 생산요소의 자유롭고 완전한 이동 등을 근거로 삼는다. 예를 들어 비교열위 산업이 퇴출되면서 발생하는 유휴자본이나 노동 등의 생산요소가 비용없이 비교우위 산업으로 완전히 이동한다는 가정이다.
KIEP와 정부는 또 농업분야를 개방품목에서 제외할 경우 외자유입 증가와 경쟁을 통한 생산성 증가로 인해 국내총생산이 352억 달러(7.75%), 후생수준이 281억 달러(6.99%)가 늘어나 고용의 총량도 약 55만1천명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그 예로 정부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외국인투자로 창출된 일자리 수가 53만명으로 같은 기간 창출된 일자리의 20%을 차지했다는 2006년 2월 LG 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KIEP가 설정한 모델이 현실을 눈 감은 낙관적이고 이론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계량모형 자체는 데이터를 무리하게 그룹화하는 등 현실적 예측력에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거가 비현실적 가정에 기초하므로 그 결과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비현실적 가정법
외자 유치로 고용이 창출된다는 논리에 대해서도 반박이 거세다. 앞서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LG경제연구원 연구도 왜곡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는 외국인직접투자가(FDI) 모두가 국산자본재를 이용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과 FDI 가운데 인수합병형(M&A)를 제외하고 ‘사업장 설립형’만을 기준으로 계산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사업장 설립형은 이 연구대로 실제 고용증대 효과를 낳았다. 반면 인수합병은 주가상승을 위해 대대적인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 고용감소를 불러왔다. 그런데 이 연구는 사업장 설립형만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오류를 범해서 “플러스 요인만 취하고 마이너스 요인은 버리는 셈법”이라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실제 FDI의 형태는 사업장 설립형의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대신 인수합병 형태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산자부 자료에 따르면 1997년에는 인수합병이 10.0%였는데 비해 2000년에는 14.1%, 2004년과 2005년에는 각각 48.2%, 45.6%까지 증가했다.
반면 사업장설립형은 97년에 90.0%에 달했으나 이듬해부터 80%대로 낮아지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76.8%로 낮아졌다가 2005년에는 54.4%까지 떨어졌다.
투기자본의 활약
특히 한미FTA협정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되는 양자투자협정(BIT) 표준안이 시행되면 단기투자 자본에 의한 대규모 구조조정과 대량 실직은 명약관화하다는 주장도 높다. 그간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물론 호주, 중동 등과의 FTA에서 BIT를 관철해왔다. 최근 강화된 BIT 2004모델은 ‘자산’ 등 투자 대상을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고, 적용대상은 공기업과 종사자, 지자체까지 넓혀서 초국적 자본이 민간영역 뿐 아니라 공공부문에까지도 투기적 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다.
BIT 2004 가운데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행의무 부과금지’ 조항으로 꼽힌다. 이 조항에 따르면 FTA 체결국은 기술이전이나 현지생산품 사용의무, 환경규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또 BIT 2004에 명기돼 있지는 않지만 특정 자본이 특정기업을 인수합병할 경우 ‘고용승계’나 ‘단협승계’, ‘내국인 일정비율 고용’ 등 의무까지 이 조항을 위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국가의 입법이나 행정, 사법 등을 통한 기업 규제조치를 투자자가 이익침해로 여길 경우, 투자자는 상대국 정부를 국제투자분쟁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다. 이 경우 패소하는 국가는 투자자에게 상당한 액수의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가령 미국자본이 국내 기업을 인수합병 할 때 노조가 고용과 단협승계를 요구해서 갈등이 발생했다고 치자. 이 경우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주면 투자자는 법원(정부)의 판결을 이익침해 행위로 보고 ICSID에 제소하면, 한국정부가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의 촉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짐을 뜻한다.
고용·단협 승계 금지
한미FTA 체결 결과 대규모 실직과 비정규직 양산, 임금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물론 정부는 비정규직 증가와 한미FTA 협상은 연관성이 없다고 해명한다.
정부는 각종 자료를 통해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은 정규직에 대한 높은 고용보호 수준과 경직적인 임금체계,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필요성과 여성과 고령자의 증가 등 복합적 요인 탓이라며 한미FTA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오히려 한미FTA를 체결하면 성장잠재력이 큰 자동차 산업의 생산이 증가하고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이 강화돼 외국인 투자가 증가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경쟁에서 탈락하는 일부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고용보험제도를 활용해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제조업 등의 무역조정지원에 관한 법’에 따라 재취업 능력개발 지원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임금 수준에 대해서도 정부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노동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노조의 협상력이 강해져 임금도 상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 협상력 강해진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전망은 한미FTA 추진에 초점을 맞춰서 짜 맞춘 근거도 미약한 ‘장미빛 희망’에 불과하다고 공박한다.
정부 주장대로 하면 1999년부터 실업률이 회복추세로 들어섰지만 비정규직이 급증한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는 외국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전 산업부문에 급속히 확산된 노동시장 유연화 추세로 인해 2000년 이후부터 취업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 고용의 형태를 띠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한미FTA는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한미FTA협상을 주도하는 미국 무역대표부는 지난해 4월 발간한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연금 활용성 확대와 노동자 채용과 해고의 유연성 강화, 실업 수당 확대 적용, 직업교육과 직업소개 기능 강화, 노동쟁의 감소 등을 제기했다. 이 가운데 실업수당 확대 적용이나 직업교육 강화는 고용안정 조치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실제는 노동유연화에 따른 반발을 줄이기 위한 보완대책에 불과하다.
주한미상의는 2005년 정책보고서를 통해 △경영진이 재량에 따라 노동자를 고용, 해고, 이전하게끔 해고 사전통보 시한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일 것과 △퇴직연금제도를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며 △단체행동 기간 중 대체근로의 투입을 허용하며 △다년임금계약을 도입해 단협의 유효기간 효력을 2년 이상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는 지난해 국회 통과 과정에서 논란이 됐던 노사관계로드맵 주요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동시장 유연화 가속화
대규모 실직 우려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산업의 중소기업 등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전경련은 지난해 1월 발간한 ‘한미FTA쟁점 사항과 대응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의약품과 화장품 분야에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2005년 11월 산업자원부의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에서 화공과 기계장비, 전기전자, 비철금속 등 제조업 등에서 예상 실직자가 최소 8천명에서 최대 6만7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도 지난해 4월 ‘한미FTA, 노동시장 노사관계’라는 보고서에서 화학과 일반기계, 전자전기업에서 다소간 일자리 상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3년 12월말 기준으로 집계한 의약품 제조업체 규모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762개 업체 가운데 300인 미만 업체가 715개(약 94%)에 이르렀다. 이들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한미FTA는 대규모 실직을 낳게 하는 재앙적 존재로 자리 잡을 공산이 크다.
결국 한미FTA는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대규모 실직 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친 대규모 구조조정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노동계 일각에서는 한미FTA로 인해 실직자가 적어도 50만명 이상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또 이들이 곧바로 다른 산업으로 흡수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농촌의 붕괴로 인해 농민들의 이농현상까지 겹칠 경우 이들은 거대한 산업예비군을 형성해서 임금 하락과 노동조건 악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