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4-09-0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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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부지부
 조회 :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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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활동가들의 삶과 고민…연대활동 쫓기며 병마 등과 고독한 싸움
홍준표, 정종태, 홍영교. 이들 세 사람은 과거 비정규 투쟁의 선봉에 서 왔거나, 현재 그 위치에 서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국의 비정규 활동가들이 늘상 경험하고 있는 농성, 단식, 파업, 해고, 가압류 등의 ‘압박’과 함께 이들의 얼굴에는 ‘의장, 책임자’라는 신분이 가지는(가졌던) 고독함이 배어 있다. 연대활동에 주력하다 보면 현장은 오간데 없고, 현장 활동을 하다보면 연대가 느슨해진다. 그 공백은 다시 무거운 짐으로 그들을 억누른다.
2000년 한국통신계약직노조 위원장으로써 사측의 계약직 7천명 해고방침에 맞서 517일 파업투쟁을 이끌었던 홍준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올 3월 현장에 복귀하기까지 민주노총에서 비정규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비정규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정종태 전 재능교육교사노조 위원장은 지난해 비정규직의 전국단위연대체를 준비하며, 특수고용대책위 의장으로서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준)’(이하 전비연) 출범에 앞장서 온 인물.
홍영교 전비연 의장은 올 2월 선출이후 비정규직 투쟁의 선봉에 서 있으며,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진작 병원에 데리고 갔어야 했는데…”
9월 1일 경기도 일산의 국립암센터 633호.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이남신, 배기남 부본부장과 홍준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위암으로 입원해 있는 정종태(38) 전 재능교육교사노조 위원장을 찾았다. 며칠 사이 초췌해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정규 활동가들은 “휴~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털털하고 목청 좋은 예전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자신의 병이 믿기지 않는 듯한 정 위원장의 표정에 비정규 활동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정종태 전 재능노조 위원장은 지난 8월초 복수가 차고, 배가 몹시 아파 가톨릭기독병원을 찾았다. 몇 천cc의 물을 빼고서야 간신히 한숨을 돌렸지만, 마른하늘에 날 벼락같은 ‘위암’ 진단을 받았다. 좀 더 자세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8월말 국립암센터로 옮긴 터였다. 담당의사는 ‘위암말기(4기)’에 복수염으로 번져 합병증이 우려되기 때문에 수술은 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에게 떨어진 것은 ‘약물치료 임상실험 동의서’. 6개월 프로그램으로 암세포의 확장을 방지하는 치료였다. “양성자실도 짓고 있고, 좋은 치료법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정 위원장은 자신의 병 상태를 예상한 듯했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틀이 멀다하고 술 마시자고 한 친구가, 한 두달 동안 연락을 안 하더라고. 농성장에서도 새벽에 깨워 술 먹자고 한 친구인데….” “가압류 때문에 월급도 십 만원 정도밖에 못 받았지. 점심 먹을 돈조차 없어 쩔쩔매더니만. 이런 일까지….” 동병상련일까. 활동가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활동가들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난의 길’을 나섰다. 정종태 위원장은 재능노조의 부당노동행위와 노동탄압에 맞서 선두에서 싸웠고, 전국비정규직대표자연대(준) 특수고용직 의장으로 헌신적으로 일해 왔다. 잦은 농성과 철야, 가압류라는 물리적 압박과 단위사업장 조합원들의 해고, 이탈 등의 심리적 압박은 젊은 비정규 활동가를 고통의 수렁 속에 빠트렸다.
“정종태 위원장이 전비연과 재능노조 간부 활동을 접고,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지원했지만 안되었지.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죠.” 비정규 활동가들은 연대활동 후 ‘현장복귀’의 어려움에 공통적으로 처한다. “비정규 활동가들 대부분이 현장으로 복귀하면서 예전 같지 않은 조직상황에 당황하게 돼요.” 홍준표(43)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올 3월부터 KT(옛 한국통신) 현장에 복귀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직이 없으니까 서글픕디다”
홍 전 위원장은 KT 화곡지사에서 통신선로 담당을 하고 있다. 일명 ‘봇대’ 맨. 8월 25일 화곡에서 만난 그의 표정은 예전보다 생기가 돌았다. “난 현장체질이라니까. 현장이 힘이다. 현장이 살아 있어야 조직이 산다”고 말할 때 그의 두 눈은 더욱 반짝였다.
6개월여 짧은 화곡생활을 마무리하고, 그는 9월초 서초지사로 옮긴다. 그는 화곡으로 옮기자마자 동료들과 모종의 일을 꾸몄다. 도급업체의 주5일제 관련 휴일수당 지급 문제와 KT원청의 수시교육 등 부조리에 대해 집단 항의를 보여주겠다는 것. 사측은 직원들 회유 등 즉각적인 대책마련에 들어갔고, 출퇴근 거리 문제로 동대문지사로 옮기려했던, 홍 전 위원장을 서초지사로 발령냈다.
‘관리자의 감시, 감독이 예전보다 심해지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대뜸 “긴장은 일상적인 것이고, 오히려 즐긴다”며 운동 관록을 과시했다.
민주노총에서 비정규직 사업을 풀어나갈 때의 애로사항은 무엇이었을까. “자기 조직이 없으니까 서글픕디다. 비정규 사업한다면서 재정, 인력 지원도 부족하고… 한계도 많이 느꼈고요….”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 속 응어리가 그만큼 컸으리라.
2000년 KT비정규직 투쟁의 중심에 섰던 그에게 어린 동료들은 ‘준표 형’이라 부른다. 화곡지사의 젊은 동지들은 ‘2000년 비정규직 투쟁’을 기억하며, ‘준표 형’에게 환송의 말을 남겼다. “다른 데 가면 나도 데리고 가라.” “아이고, 딴 데 가면 조용해지겠네. 속 시원하다.”
현장에 복귀한 뒤 예전 같지 않은 조직을 추스리느라 눈코뜰새 없는 그는, 젊은 동료들의 지나친(?)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의존’으로 흐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대부분의 비정규 활동가들이 복귀하더라도 허리(중간간부)가 약한 구조적인 문제로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이남신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부본부장의 말처럼 비정규 활동가들의 현장 조직 사정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전국 연대활동과 현장사업을 병행하는 홍영교 의장은 어떨까.
“서약서 작성은 잘못된 판단, 반성한다”
“요즘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휴~힘드네요.” 홍영교(37)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의장은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중심에 서 있다. 올 2월 의장으로 선출된 후 홍 의장은 아산과 서울,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반기 파견법 개악 저지와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하루 총파업’ 결의를 모아낸 것도 그였다. 그는 “비정규 활동가들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기조직 보호심리와 ‘민주노총이 해준 게 뭐냐’는 뿌리 깊은 불신과 싸워나가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토로했다.
우리 내부의 패배주의, 관료주의 경향성과 싸워야 하고, 비정규 주체의 투쟁을 통해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그의 말대로 그의 운동경력은 짧지만 투쟁의지는 여느 운동가를 능가한다.
“비정규 현장에서 법개정 투쟁 얘기하면 씨알이 잘 안 먹힌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가 되는 싸움만 했습니까. 민주노총 욕만 하고, 우리의 투쟁을 방기한다면 똑같은 것 아닙니까.” 사람 좋게 웃는 모습 속에 그의 강인함이 배어 나온다.
최근 복직한 그에게 현대차아산공장사내하청지회의 일은 전비연 활동과는 또 다른 일상적 시련과 마음고생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문제의 발단은 8월말 해고자 복직 합의와 관련 사측과 맺은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사규를 준수한다’는 내용의 서약서. 지도부가 사측에 굴복해 작성한 서약서는 ‘노동운동의 대의와 비정규투쟁의 건강성을 해친다’는 강력한 내부비판이 있었다.
홍영교 지회장은 최근 “모든 책임을 지고 지회장직과 연대회의 의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후 주변의 사퇴 만류와 노조의 결의로 지회 지도부는 자숙하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매듭은 지어졌다.
“서약서 작성은 잘못된 판단이었고, 뼈저린 자성의 계기로 삼으려 합니다. 2년여 동안 붕 떠서 생활한 듯한 느낌입니다. 열의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다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 의장의 심한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그동안 노동운동 내부에서는, 지도부의 과오에 대해 서로서로 묵인하고 방조하는 풍토가 종종 있어왔다. “노동운동의, 비정규 운동의 건강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부의 잘못을 감추려 해서는 안된다”는 홍 의장의 소신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곳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변명의 여지를 결코 허락하지 않으려는 자세였다.
비정규 조직화와 투쟁의 한 가운데서 자신의 몸을 던진 전국의 비정규 활동가들. 이들의 고단한 백 걸음은 비정규직 운동의 일보전진을 가능케 하는 밑거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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